본문 바로가기
부자 경제학

삼국지의 조조 성공을 위해 때와 기다림을 알아야한다.

by 호이짜호이호 2023. 1. 5.
300x250
반응형

삼국지의 조조 성공을 위해 때와 기다림을 알아야 한다.


삼국지 조조 캐릭터 정보
자는 맹덕(孟德). 지금의 안휘성 출신으로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후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동탁 암살 실패로 세상을 떠돌던 중 원소, 원술과 동맹을 맺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조의 명언


1. 차라리 내가 천하를 등질지언정
천하가 나를 등지게 하지는 않겠다.

2. 만약 천하에 내가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왕이라 칭했겠는가?

3. 너희가 나 조조를 보고 싶으냐?
나 또한 똑같은 사람이다.
눈이 넷 달리고 입이 둘 달린 게 아니라
지혜와 계책이 많을 따름이다.

4.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으니
이를 걱정함은 어리석은 일이다.

5. 안전하고 평화로울 때에도 위급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늘 대비책을 세워두어야 한다.

6. 도덕적이진 않으나 재능만
있다면 관리로 등용하겠다.

7. 산은 영원히 그 높이에 만족하지 않고
물은 영원히 그 깊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8. 작은 일도 잘하고 또 큰 일도
잘하는 것이 무에 나쁠 것이 있겠소

9. 나는 신하와 관리에게도 사사로이
치우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들들에게도
사사로이 치우친 정을 품지 않을 것이다.

10. 지금은 바야흐로 영웅호걸을
거두어야 할 때요.
한 사람을 죽여 천하의 마음을
잃어서는 아니 될 것이외다.

11. 지금, 천하의 영웅은 오직
사군과 나 조조뿐이외다.

반드시 기억하라 성공하려면 때를 알아야 한다.

성공을 위한 때와 기다림


성공을 위한 기다림

'삼국지연의'에는 조조가 허베이를 평정할 때 기다림으로 승리를 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조조에게 패한 원소의 아들 원희·원상은 요동으로 도망하여 공손강에게로 갔다. 하후돈 등 측근들은 조조에게, "공손강이 오랫동안 굴복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서 원희·원상이 또 가담하였으니 장차 우리의 큰 후환이 될 것입니다.
공손강이 아직 군사를 일으키지 않은 틈을 타서 속히 가서 친다면 요동을 가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조조는 웃으며 말했다.

"제공의 호위를 빌릴 필요도 없을 것 같소. 며칠 후면 공손강이 두 원 씨의 머리를 가져올 것이오."

여러 장수들은 모두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공손강이 과연 사람을 보내어 원희·원상의 머리를 가져왔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크게 놀라 조조의 귀신같은 혜안에 감복하여 마지않았다.

이때 조조는 도리어 크게 웃으며, "과연 봉효(곽가)의 짐작을 못 벗어나는군." 하고 말하며 곽가가 죽기 전에 조조에게 남겨준 편지를 꺼내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듣건대 원희·원상이 요동에 가서 가담했다 하니 명공께서는 절대 군사를 쓰지 마십시오. 공순강은 일찍부터 원 씨들이 요동을 병탄 할까 봐 두려워하였는데 이번에 두 원 씨가 가서 가담하였으니 반드시 이를 의심할 것입니다. 만약 군사로 치신다면 그들은 힘을 합해 항거할 것이나, 늦추어 준다면 공손강과 원 씨는 반드시 서로 도모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이렇게 기다려서 승리는 취하는 전략을 가리켜 隔岸觀火 (격안관화)의 전략이라 부른다.

이때 이것은 소극적으로 넋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상대의 정황을 잘 살피면서 주시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적극적인 기다림이다.
즉 기다려서 운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강한 힘을 누르고 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승리하는 것이다.

또 병법의 대가 손자는 "강물에 거품이 일 때는 강을 건너지 마라 강물이 거품이 일 때는 상류에서 강물이 불어 났다는 신호이므로 이때 강을 건너면 화를 입는다"라고 말한다

강을 건너려 할 때 거품이 인다는 것은 상류에 비가 많이 내려 홍수가 났다는 의미 일 수도 있고, 적군이 강을 막아 급류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강을 건너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거품을 보는 것은 안목이다.

강물은 평소와 다름없이 흐르고, 나는 그것을 충분히 건널 수 있지만, 강을 건너기 전에 그것을 잘 살펴 내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닥칠 화를 제거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기다림으로써 화를 면하는 경우와 기다림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변화"의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소심하고 "안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변화와 기다림의 사이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다함을 알고 변화를 하되. 그 변화는 때를 아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가 이르지 않았는데 무조건 변화를 생각하거나, 다하였음에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모두 잘못된 일이다.
먼저 지금 내가 접하고 있는 모든 상황을 정돈을 해보자, 가정에서는 변화가 필요치 않은가? 회사에서는 막혀 있지 않은가? 대인관계에서는 궁하지 않은가? 지금 내가 가진 자산의 운용은 그 흐름이 강물처럼 유연한가?

그리고 그중에서 막혔다고 여겨지는 것을 우선순위에 올리고 그것을 소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때를 아는 것이어야 하고, 소통의 방식 역시 좀 더 쉬운 방향,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 독창적이고 힘들면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약 그것을 통하기 위해 쉬운 길만 찾는다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후퇴이며 이러한 후퇴는 곧 스스로를 쇠퇴의 길로 몰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혹은 내 안에서 이런 질서를 유연하게 체득해야 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변화하고, 낮과 밤이 교대하듯이 성한 것은 쇠하고 , 쇠하면 성한다는 이치를 내 안에 받아들이고, 변화를 거부하거나 그렇다고 애써 변화를 꿈꾸지도 말고,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변화를 기다리지도 않는 것이다.

변화란 지금도 일어나는 순환이며 생명이다.
인체 역시 태어나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변하지만 우리는 단지 10년 전의 사진을 꺼내 볼 때만 그 변화를 깨달을 뿐, 불과 10분 전, 한 시간 전과 지금의 내가 다름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들과 기회들을 보고도 어제와 오늘의 변화를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변해버린 세상을 탓하면서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는 내가 살아가는 생명이고 몸짓이고, 공기고 호흡이다.

유연하게 변화하고 궁하기 전에 다함을 깨닫고 궁하기 전에 변하고 변함으로써 소통하여 쇠퇴함이 없을 것이되, 그 변함을 정해진 때로 여기거나 맹목적인 목표로 삼아 봄에 추수를 준비하고 가을에 파종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때를 모르는 것이므로 변화를 통해 오히려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항상 변화를 관찰하고 그것을 내 안에 받아들여 하나가 되도록 하라,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라 성공하려면 때를 알아야 한다.

728x90
300x250

댓글